[원장칼럼] 마지막잎새, 거짓말같은 진짜희망, 그리고 의사의 할일

어젯밤큰 아이가 가져온 책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였다.

 


너무 흔한 얘기였고 이미 다 아는 재미없는 얘기라 다른 책을 읽어보자 했지만 아이는 책 표지의 나뭇잎 사진이 맘에 들었는지 꼭 읽고 싶다고 한다.

중학교 때 교과서에서까지 봤던 책이라 재미없게 시작했지만,

의사가 되고 새로 처음 접하는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는 이야기였다. 

얼마 전 한 환자는 퇴행성 관절염으로 10년 전 진단받고는 너무 아픈데도 치료도 안하고 병원에도 안 다녔다며 이제는 너무 아파서 왔다며 집에서부터 먼 길을 버스 세 번 갈아타고 오셨다.

왜 치료 안 하셨어요 물으니

뭐 치료 방법도 없고 진통제나 먹다가 다 되면 수술하는 수 밖에 없다" 하니 뭐하러 치료하나 싶기도 하고 속상해서 안 갔다

는 얘기를 들으니 내가 미안하고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.

어떤 병을 진단받으면 환자들이 제일 먼저 물어보는 말은, “나을 수 있어요?” “얼마나 치료하면 좋아져요?” 이다. 

만성적으로 반복되는 관절염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로서 완치되는 건 사실 쉽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곤란한 질문이지만요즘은 약을 끊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훨씬 좋아져서 놀러 다니실 정도는 되실꺼예요

진실인 듯 거짓말인 듯한 말로 돌려 대답하곤 한다. 

예전엔 왠지 좋아질 수 있다고 해놓고는 계속 아프면 책임이 나에게 돌아올까봐나를 원망할까봐 이렇게 말을 콕 짚어 얘기했지만이제는 최선을 다 해볼께요” 란 말로 대체하고는 손 한번무릎 한번 만져드린다

 

왜 자기 몸 상태를 환자들이 모르겠는가

알지만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입에서 좋아질 수 있다란 말을 듣고그걸 통증의 긴 터널에서 저 멀리 보이는 단 하나의 빛으로 삼아 어둡고 지칠수 있는 길을 걸어갈 힘으로 삼고자 하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

마지막 잎새를 그려 소녀에게 하루 하루를 버틸 힘을 주었던 것처럼어쩌면 의사가 하는 일도 질병과 자연의 흐름을 늦추고 이겨낼 희망을 주는 것 

그리고 실제로 의학적인 부분에서도 희망을 가질만한 약제들이 많이
나오고 있으니

오늘도 관절이 다 닳아 많이 아픈 할머니께 다 나을 순 없지만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아지실 꺼예요… 계속 아프면 다른 치료도 있으니까… 할 수 있는 건 다 열심히 해봐요…” 

희망을 주면서도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